카를 마르크스가 정립한 정치경제학 비판이론으로부터 출발한 경제사상
동구권 붕괴 이후엔 유행이 지나가 버리면서 소수의 사람만 전공하는 수준에 머물러있지만, 경제위기가 찾아올 때마다 한 번씩은 꼭 다시 언급되는 경향이 있다.
노동가치론에 근거하여 경제를 분석한다는 측면이 두드러진다. 정치적으로는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지향이 있는 사람들에 의해 지지받고 연구되며, 당연하지만 과거 동구권 붕괴 이전의 현실 사회주의권에서는 공식 학문의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마르크스 경제학을 일컬어 정치경제학이라고도 하는데, 여기엔 복합적인 이유가 있다.
가장 큰 이유는 마르크스 경제학이 한국에 수입된 시기가 1980년대 군사독재 시기였기 때문에 마르크스주의라는 이름을 그대로 쓰면 위험했으므로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김수행의 회고에 따르면 반공주의가 극심했던 당시 대한민국 풍토상 이목을 끌지 않으려고 일부러 강의 제목을 이런 식으로 지었다고
경제학설사에서는 지금도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지만, 오늘날 경제학계에서는 이런저런 비판으로 인해 대접이 좋지 못하다.
마르크스 경제학 이론을 설명하기 위해선 우선 상품과 가치부터 설명해야 한다. 상품은 인간의 욕망을 만족시키는 물질을 말하며, 만약 그 물질이 인간의 욕구를 만족시킬 수 있는 유용성을 가진다면 그 물질은 사용가치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상품과 재화는 사용가치를 가진다 할 수 있다. 그런데,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품은 다른 상품과 교환되며, 따라서 교환가치를 가진다 할 수 있다.
상품의 교환에서, 동일한 사용가치를 가진 물건들이라면 교환할 필요가 없다. 가령, 쌀과 구두의 교환은 서로 다른 사용가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성립된다.
X 가마니의 쌀과 Y 켤레의 구두가 동등하게 교환될 경우, 양자에 어떤 공통된 것의 동일 양이 들어 있다는 것을 뜻한다. 사용가치로서의 상품은 무엇보다도 질적으로 구별되나 교환가치로서의 상품은 오직 양적 차이를 가질 뿐이다. 따라서 여기에는 사용가치가 조금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 만약 사용가치를 무시한다면, 여기에는 오직 하나의 속성, 정리하자면 그것이 노동생산물이라는 속성만 남는다. 그것은 더 이상 농부, 제화공의 노동생산물이 아니며, 기타 어떤 특정한 생산적 노동의 생산물도 아니다.
모든 노동생산물은 그들에게 공통적인 인간노동력이 지출되어 응고된 것이기 때문에, 사회적 실체의 결정체로서의 가치, 즉 상품가치를 가진다. 즉, 요약하자면 '상품의 교환가치'란 상품의 가치가 교환될 때 나타나는 가치의 현상상태를 말한다고 할 수 있다.
노동생산물의 유용성이 사라짐과 동시에 노동생산물에 투하된 노동의 유용한 성질도 사라지고, 따라서 노동의 상이한 구체적 형태도 사라진다. 이들 노동은 더 이상 서로 구별되지 않고 모두 동일한 종류의 노동 즉 '추상적 인간 노동'으로 환원된다.
앞서 상품이 가지고 있는 가치의 실체는 동일한 인간의 노동이라고 했는데, 이 점을 좀 더 살펴보면 상품은 사용가치임과 동시에 교환가치라는 이중성이 있으며 상품에 들어가 있는 인간의 노동도 이에 대응하여 이중성을 가지고 있다. 나무를 재단하여 자르고 식탁을 만드는 노동이나, 씨를 뿌리고 비료를 준 후 벼를 수확, 탈곡하여 쌀을 만드는 노동처럼 상품에 내재된 특정한 구체적 형태의 노동을 구체적 유용노동이라 한다. 이 구체적 유용노동이 상품의 사용가치를 만들어 낸다.
다른 한편 가구 생산이나 쌀 생산노동은 구체적인 형태와 상관없이 인간이 두뇌, 신경, 근육 등을 활용하여 생산활동을 벌인 노동이라는 점에서는 따로 구별되지 않는 동일한 노동이다. 이같이 동일한 인간노동을 추상적 인간노동이라 부른다.
하여 각각의 구체적 노동으로 만들어진 다양한 상품이 서로 비교되고 동등한 것으로 교환될 수 있는 것은 모든 상품이 추상적 인간노동을 공통으로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 가치의 실체는 동일한 인간노동이라 했는데 보다 정확히 말하면 가치란 상품에 내재된 추상적 인간 노동의 대상화이다.
Q.가치의 크기는 어떻게 결정될까?
가치의 크기는 상품의 생산에 지출된 추상적 인간노동의 양에 의해 결정된다. gotj 어떤 상품을 만드는 데 필요한 노동시간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상품의 가치는 큰 것이 된다.
가치는 상품을 만드는데 개개의 생산자가 들인 노동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고, 그 상품을 만드는데 그 사회에서는 평균적으로 얼마만큼의 노동시간이 들어가는가에 따라, 즉 사회적 필요노동시간에 의해 결정된다. '사회적 필요 노동시간'이란 그 사회의 표준적 생산조건, 평균적 노동숙련도, 평균적 노동강도 하에서 어떤 상품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노동시간을 말한다.
ex. 옷 한 벌 생산하는데 사회적 필요한 노동시간이 8시간인데, 어떤 생산자가 낮은 숙련도, 낡은 설비 등으로 인하여 12시간 걸려서 동일한 품질의 옷을 만들었다면, 그의 노동은 사회적으로 8시간밖에 계산되지 않는다.
위와같이 상품 가치의 크기는 그 상품을 생산하는데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에 의해 결정된다. 이 법칙을 '가치법칙'이라고 한다. 상품의 생산과 교환은 이 가치법칙에 의해 규제된다. 즉, 상품의 가치는 노동생산성이나 노동강도의 변화에 따라 변동되는 셈이다.
상품의 가치는 그 상품이 시장에서 다른 상품과 교환될 때 비로소 교환가치라는 형태로 눈으로 볼 수 있게 된다. 우리가 자기 얼굴을 보려면 거울을 들여다보아야 하듯이 상품도 그 가치를 나타내기 위해서는 다른 종류의 상품을 거울삼아 비춰보아야 한다.
■ 눈으로 볼 수 있는 가치의 형태, 가치의 사회적 교환 형태를 '교환가치' 또는 '가치형태'라 부른다. 그리고 가치 형태가 가장 발전한 것이 화폐와 가격이다.
이젠 가치법칙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볼까?
가치법칙이란 상품의 생산과 교환을 규제하는 법칙으로써, 상품가치의 크기는 그 상품을 생산하기 위해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에 따라 결정된다는 법칙이다.
수요가 공급보다 많을 때는 시장가격이 올라가고 공급이 수요보다 많을 때는 시장가격이 내려간다.
시장가격은 계속해서 가치 이상으로 올라가기도 하고 가치 이하로 내려가기도 하지만, 장기적/평균적으로 보면 결국 가치의 수준에서 결정된다.
가치법칙은 무수한 가격 변동을 통하여 결국 가격은 가치(그것을 가격으로 표시한 것)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관철함으로써 상품의 생산과 교환을 규제하고 있다는 것이 가치법칙이다. 한편 그 예로 첫 번째는 생산수단과 노동력의 배분을 규제하는 것인데, 상품생산사회에서는 경쟁과 생산의 무정부성이 지배하는 까닭에 개개의 생산자는 어느 만큼의 상품을 생산해야 좋을지 모르는 채 맹목적으로 시장을 위해 생산한다.
이로인해 어떤 상품은 너무 많이 생산되어 그 상품의 가격은 가치 이하로 떨어지고, 자연히 그 상품의 생산자는 그 생산부문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보다 유리한 생산부문으로 옮아가게 된다(자본의 이동). 하여 그 생산부문은 공급량이 줄어들고 그 가격은 상승하여 가치의 수준으로 올라가게 된다.
**상품생산사회에서는 가치법칙의 작용에 따라 각 생산부문에 대한 생산수단과 노동력의 배분이 사후적으로 조정된다.
두 번째로는 생산자들의 경쟁을 통하여 기술이 진보되고 생산력이 증대되는 것이다.
상품생산자들은 다투어 기술을 개량하여 노동생산성을 상승시킴으로써 그 차액을 얻으려 한다. 만일 어떤 사람이 기술개량을 소홀히 하여, 그 상품의 개별적 가치가 사회적 가치보다 높아지면 그는 그만큼 손해를 보게 되고 몰락해 버릴 것이다. 이렇게 하여 상품생산사회에서는 더 많은 이익을 얻기 위한 생산자들의 경쟁을 통하여 기술이 진보하고 사회의 생산력이 증대하게 된다.
상품의 가치는 그 상품을 생산하기 위하여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보다 좋은 기술을 채택하여 노동생산성을 상승시킨 상품 생산자는 사회적 필요노동시간보다 짧은 노동시간 안에 그 상품을 생산할 수 있다. 그런데 상품은 사회적 가치로 매매되기 때문에 그 상품생산자는 사회적 가치와 개별적 가치(그 생산자가 개별적으로 지출한 노동량)의 차액을 남길 수 있다.
부유한 소수와 가난한 다수로의 사회의 계층 분화가 심화되는 경우가 있다. 격심한 경쟁 속에서 더 진보된 기술을 채택하고 보다 많은 생산수단을 가진 상품생산자는 더욱 많은 부를 축적하고, 열악한 생산조건밖에 갖지 못한 상품생산자는 경쟁에서 뒤져 적자가 누적되면 몰락하게 된다. 이리하여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부유한 소수와 동시에 가난한 다수가 발생한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에서는 물건을 생산하는 개별노동자들의 사회적 관계를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이를 물건들 사이의 사회적 관계로써 나타내며, 본질을 은폐한다고 주장한다. 즉 본질과 현상이 전도되어 나타난다는 것
상품물신성 : 종교에서 인간 두뇌의 산물인 신이 자립적인 존재로 등장하여 자신들 사이에 그리고 인간과의 사이에 일정한 관계를 맺듯이, 상품 세계에서 인간 손의 산물들인 상품이 이처럼 등장한다. 즉 상품생산자들 사이의 사회적 관계가 상품이란 물건들 사이의 사회적 관계라는 형태를 취한다.
화폐물신성 : 상품물신성은 화폐에 이르러 화폐물신성으로 발전하여 사회적 관계를 더욱더 은폐한다. 금의 직접적 교환가능성은 사회적 관계 발전의 산물이 아니라 금이 갖는 자연적인 속성인 것처럼 나타난다.
자본물신성 : 자본에 이르러 자본물신성으로 한 단계 더 발전한다. 이윤의 원천은 노동자들의 착취에 의한 잉여가치에 있는데, 이것들은 생산수단 자체가 갖는 자연적인 힘인 것처럼 나타난다. 결국 착취를 은폐한다. 지대도 마찬가지로 토지의 자연적 속성에서 발생하는 것처럼 나타난다.
잉여가치, 임금
'잉여가치'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수단은 자본가들에 의해 소유되어 있으나, 노동자 없이는 상품을 생산할 수는 없다. 그래서 자본가는 시장에서 노동력을 사들이고, 그것을 이용하여 상품을 생산한다. 자본주의 생산의 목적은 이렇게 생산된 노동생산물을 상품으로 판매하여 거기서 이익(이윤)을 얻는 데 있다. 마르크스는 자본가들이 노동자들도 생산성 향상에 참여해 노사가 협력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엥겔스가 사적 유물론과 함께 마르크스 양대 업적 중 하나로 꼽은 것이다, 고전 경제학에 따르면, 노동자와 자본가는 자유의지에 따라 노동자가 소유한 노동력과 자본가가 소유한 화폐를 동등한 입장에서 등가로 교환하기 때문에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이라 노동자에 대한 착취는 없다고 주장하지만, 마르크스는 이에 대해 비판을 가한다.
이윤은 마치 상품을 가치 이상의 가격으로 파는 데서 생기는 것처럼 보인다. 허나 마르크스는 이것을 부정한다. 자본가는 자기 상품의 판매자임과 동시에 다른 자본가의 상품 매입자이므로 그는 한편에서 얻은 것을 다른 편에서 잃는 셈이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본가들은 왜 이윤을 얻는가 하는 문제가 생기는데
예를들어..
1) 갑이 을로부터 100만 원짜리 상품을 구입해서 병에게 120만 원을 받고 판다면 갑은 20만 원의 이윤을 얻는다.
허나 병은 20만 원의 손해를 보기 때문에 사회 전체적으로는 이윤이 전혀 발생하지 않는다. 또한 갑이 병에게 상품의 가치보다 높게 판매할 수 있다면, 갑에게 상품을 판매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로 상품의 가치보다 높게 판매할 수 있다고 가정해야 할 것이므로 갑 자신도 이러한 방식으로는 이윤을 얻을 수 없다.
2) 갑은 5만 원의 가치가 있는 구두를 을에게 팔고 그 대신 을이 가진 6 만원 짜리 핸드백을 얻었다고 하면, 갑은 분명히 5만 원을 6만 원으로 증식시켰지만, 사회 전체적으로는 아무런 변동이 없다. 이 사회에는 여전히 5만 원의 구두와 6만 원의 핸드백이 있고, 다만 총가치의 분배가 달라졌을 뿐이다. 즉 이제 갑이 6만 원의 핸드백을 가지고 있고 을이 5만 원의 구두를 가지고 있다.
즉 전체적으로 보면 이윤은 다른 데서 발생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윤이 상품의 매매 과정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므로, 당연히 상품생산 과정에서 생길 수밖에 없다. 지금 어떤 자본가가 1억 원의 자본을 투자하여 8,000만 원으로 생산수단을, 2,000만 원으로는 노동력을 사서 생산을 시작했다고 하자. 즉 총자본 1억 원, 생산수단 8천만 원, 노동력 2천만 원, 총상품 1억 2천만 원이다.
생산수단에 포함된 8,000만 원의 가치는 생산과정을 통하여 노동자의 구체적 유용노동에 의해 그 가치의 크기가 변화되지 않은 채 새로 만들어진 상품에 이전된다. 그런데 새로 생산된 상품의 가치는 생산수단에서 이전되어 온 부분 외에도 그 상품을 생산하기 위해 노동한 노동자의 추상적인 인간 노동이 만들어낸 새로운 가치를 포함하고 있다.
마르크스는 이처럼 가치의 이전과 새로운 가치의 창조는 생산과정 속에서 동시에 행해지며, 이것은 상품을 생산하는 노동의 이중성에 기반을 둔, 노동의 이면적 작용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즉 노동자의 노동은 한편으로 구체적 유용노동으로서 생산수단에 포함된 가치를 생산물로 이전시켜 사용가치를 생산하며 동시에 추상적 인간노동으로서 작용하여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고 이를 생산물에 부가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노동자의 노동력이 생산과정에서 소비됨으로써 만들어내는 새로운 가치의 크기는 그 노동력의 가치의 크기와는 다르다. 마르크스는 사실 이 두 가치의 사이의 관계야말로 '자본주의적 착취(搾取)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고 말한다.
먼저 노동력의 가치, 즉 노동력 자체가 상품으로서 가지고 있는 가치의 크기는 노동자와 그의 가족의 생계에 필요한 생활수단의 가치에 의해 결정된다. 이에 대하여 노동력의 소비로 만들어지는 새로운 가치의 크기는 생산과정상 노동시간의 길이에 의해 결정된다. 노동시간이 길면 만들어 내는 가치도 커진다. 그리고 후자는 보통 전자보다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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